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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소식&정보 · July 17, 2026

서양인이 어두운 걸 잘 본다? 게임이 어두운 진짜 이유

오라시온9 min read2
눈 단면도. 홍채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이고, 망막의 간상세포가 어둠을 감지하는 센서라는 것을 보여주는 개념도

얼마 전에 킹덤컴 딜리버런스의 시야각과 밝기를 콘솔로 조절하는 글을 쓰면서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어두운 것을 더 잘 본다, 그래서 서양에서 만든 게임은 대체로 어둡고, 그래서 게임을 처음 켜면 "이 마크가 겨우 보일 때까지 밝기를 조절하십시오" 같은 화면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나름 그럴듯해서 오랫동안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찾아보니 거의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게다가 게임이 그 감마 화면을 넣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왕 조사한 김에 정리해서 공유해보겠습니다.

서양인이 어두운 걸 잘 본다? 게임이 어두운 진짜 이유-3

서양인이 어두운 곳을 더 잘 본다는 이야기, 사실일까?

저만 들은 이야기는 아니더라구요.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 "서양인은 어두운 곳을 더 잘 볼 수 있다" 류의 짤이 몇 년째 주기적으로 올라옵니다. 안구 구조 비교 이미지를 붙여놓고 게임의 밝기 기본값이 푸른 눈 서양인 기준이라, 안내대로 맞추면 동양인 눈에는 어둡게 보인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재미있는 건 영어권 커뮤니티에서는 이 이야기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 커뮤니티에서 유독 오래 도는 이야기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짤에 달린 댓글에도 반박은 이미 많습니다. "그냥 감마값 조정일 뿐 눈 색이랑 무관하다", "다크소울이나 엘든 링은 서양인한테도 어둡다" 같은 지적들이요. 그러니 이 글이 무슨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건 아니고, 근거를 하나씩 찾아서 정리해둔 쪽에 가깝습니다. 저처럼 어렴풋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분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먼저 정확히 짚고 갈 부분이 있습니다. 이 속설은 사실 인종이 아니라 눈동자 색(홍채 색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양인은 파란 눈이라 색소가 적어서 빛이 더 많이 들어오고, 그래서 어두운 곳을 잘 본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 확인해야 할 것은 "눈 색이 야간 시력에 영향을 주는가"가 되겠습니다.


대규모 연구에서는 차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자료는 2016년 PLOS ONE에 실린 암소시(scotopic) 시력 연구입니다. 40세 미만에 낮 시력이 정상인 501명을 모아서 어두운 환경에서의 시력과 대비 감도를 측정한 연구인데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난시, 홍채 색, 일주기 리듬 선호, 우울 여부, 시간대, 피로도, 색각 이상 중 어느 것도 암소시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눈 색은 유의미한 영향이 없는 항목으로 분류된 겁니다. 오히려 이 연구에서 야간 시력 차이를 가장 크게 설명한 변수는 측정에 걸린 시간(전체 편차의 27%)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눈 색보다 얼마나 오래 어둠에 적응했느냐가 압도적으로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원리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어두운 곳을 보는 일은 망막의 간상세포(로드)가 담당하는데, 간상세포의 수와 기능은 홍채 색소와 상관이 없습니다. 홍채는 그냥 조리개고, 실제로 어둠을 보는 센서는 따로 있는 셈입니다.

눈 단면도. 앞쪽의 홍채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이고, 뒤쪽 망막의 간상세포가 어둠을 감지하는 센서라는 것을 보여주는 개념도

카메라로 치면 홍채는 조리개, 간상세포는 센서인 셈입니다. 조리개 색깔이 다르다고 센서 성능이 달라지지는 않겠죠. 야간 시력에는 눈 색보다 동공 크기, 나이, 눈 건강 상태가 훨씬 크게 작용합니다.


그럼 완전히 헛소문일까?

솔직하게 반대쪽 근거도 같이 놓고 보겠습니다. 2024년에 나온 프리프린트 연구 하나는 유럽계 안에서 파란 눈과 갈색 눈을 비교했는데, 짧게 암순응한 직후에는 파란 눈 쪽이 더 잘 봤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두 가지를 감안해야 합니다. 하나는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프리프린트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충분히 암순응한 뒤에는 차이가 없다는 기존 연구와 결이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즉 최대치의 차이가 아니라 "적응 속도" 쪽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방향이 오히려 반대인 부분도 있다는 점입니다. 색소가 적은 밝은 눈은 빛이 더 많이 통과하고 안에서 산란하기 때문에 눈부심에 더 취약합니다. 밝은 곳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쪽이라는 것이죠.

무엇보다 "서양인 대 동양인"이라는 구도 자체가 좀 헐겁습니다. 서양인 중에도 갈색 눈이 아주 많으니까요. 이탈리아나 스페인 쪽을 생각해보면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Info

백색증처럼 색소가 거의 없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간상세포 수 자체가 적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다만 이건 일반적인 눈 색 차이와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라, "파란 눈이라 밤에 잘 보인다"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 게임의 그 감마 화면은 왜 있는 걸까?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속설이 사실이라면 감마 조절 화면은 서양 게임에만 있어야 할 텐데, 일본 게임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캡콤의 레지던트 이블 2·3·4, 프롬소프트웨어의 다크소울 3, 세키로, 엘든 링 전부 밝기 조절 화면이 있고, 오히려 이 회사들의 PC 이식작은 밝기·색 범위 문제로 유저 불만이 특히 많은 편입니다. 서양 게임 전용 문구가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킹덤컴 딜리버런스도 서양 게임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체코 스튜디오(워호스) 작품이구요.

그럼 진짜 이유는 뭘까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모니터마다 어두운 부분이 다르게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같은 게임이라도 모니터·TV마다 감마 커브와 블랙 레벨이 제각각이고, 거실 조명이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개발사는 유저의 화면이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 "이 심볼이 겨우 보이는 지점"이라는 기준점을 유저에게 직접 잡게 하는 것입니다. 인종이 아니라 장비 편차 문제입니다.

2. 블랙 크러시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운 회색 계열이 전부 뭉개져서 새까맣게 나와버리는 현상을 블랙 크러시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림자 속 지형이나 적의 실루엣, 벽의 질감 같은 게 통째로 사라집니다. 감마 화면은 순수한 검정은 검정으로 두면서, 그 바로 위의 어두운 단계들은 살아있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감마 설정에 따른 어두운 단계 비교. 너무 어두우면 여러 단계가 같은 검정으로 뭉개지고, 적정 지점에서는 단계가 모두 구분되며, 너무 밝으면 검정이 회색으로 들뜨는 것을 보여주는 개념도

위 그림에서 첫 번째 줄을 보시면 어두운 네 칸이 아예 같은 검정으로 합쳐져 있습니다. 원래는 서로 다른 밝기여야 하는 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상태인데, 게임 안에서는 이게 곧 그림자 속에 있는 적이 안 보인다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세 번째 줄은 검정이어야 할 칸까지 회색으로 떠서 화면이 뿌옇습니다. 가운데 줄처럼 검정은 검정으로 두면서 바로 위 단계는 구분되는 지점을 찾는 게 감마 화면의 목적입니다.

Tip

참고로 저 그림이 본인 모니터에서 어떻게 보이시나요? 첫 줄의 네 칸이 다 똑같아 보이거나, 반대로 미세하게 구분된다면 그것부터가 모니터마다 어두운 영역이 다르게 보인다는 증거입니다. 감마 화면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3. RGB 레인지(Limited/Full) 설정이 어긋나 있기도 합니다

특히 PC에서 자주 겪는 문제입니다. TV용 기준인 Limited 레인지와 모니터용 Full 레인지가 어긋나면 화면이 전체적으로 뿌옇거나 반대로 어두운 부분이 뭉개집니다. 캡콤·프롬 게임의 PC판에서 "왜 이렇게 어둡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 엔비디아 제어판의 출력 동적 범위를 Full로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요즘 게임은 그냥 어두워진 편입니다

물리 기반 렌더링과 HDR이 보편화되면서 조명 표현이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어두운 곳은 실제로 어둡게 나옵니다. 이건 동서양 구분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가깝습니다. 엘든 링도 어둡다고 불평 듣는 게임이니까요.


그래서 감마 화면은 어떻게 맞추면 될까요

이왕 알아본 김에 실용적인 부분만 정리해봤습니다.

  1. 평소 게임하는 조명 상태에서 맞추세요: 낮에 커튼 열고 맞춘 값과 밤에 불 끄고 맞춘 값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 RGB 레인지부터 확인하세요: PC라면 그래픽 카드 제어판에서 출력 동적 범위가 Full인지 먼저 보는 게 순서입니다. 이게 어긋나 있으면 감마를 아무리 만져도 겉돕니다.
  3. 문구 그대로 "겨우 보이게"가 맞습니다: 잘 보이게 맞추면 그 게임의 의도된 명암이 전부 떠버립니다.
  4. OLED는 조금 다릅니다: 완전한 검정을 표현할 수 있다 보니, 안내대로 맞추면 의도보다 어둡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조금 밝게 잡아도 괜찮습니다.

마무리

정리하면 눈 색이 야간 시력을 좌우한다는 근거는 대규모 연구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게임의 감마 화면은 인종이 아니라 모니터마다 어두운 부분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는데 찾아보니 아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재미있는 결과였습니다..

"내 눈이 어두운 걸 잘 못 봐서 그런가" 하고 넘어가셨던 분이 계시다면, 그건 눈 문제가 아니라 설정 문제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RGB 레인지랑 감마 설정을 한 번 점검해보시길 권합니다. 반대로 이런 조절 화면이 아예 없는 게임이라면, 아래 글처럼 콘솔 명령어로 직접 밝기를 올려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혹시 이 주제에 대해 더 정확한 자료를 알고 계시거나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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